제목 | 정부의 '의료 영리화' 꼼수에 대응하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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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세븐인터내셔널 | ||
작성일 | 2014-12-08 12:21 | 조회수 | 2,088 회 |
본문
윤태호 부산대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데일리팜(dailypharm@dailypharm.com) 2014-06-27 08:52:23
의 료 영리화는 한 마디로 '의료의 상품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의료의 상품성 강화 목표는 결국 '높은 이윤'을 내기 위한 것인데, 이 과정에서 의료의 본질인 국민의 건강 보호와 증진이라는 가치와 충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의료 영리화 주장의 성격과 주요 내용
의료의 상품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의료에는 본래 공공적 요소와 산업적 또는 시장적 요소가 함께 존재하는데, 그동안 우리 사회가 공공적 요소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시장적 요소가 무시되어 왔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공적 건강보험인 국민건강보험제도와 영리법인 병원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의료법은 그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영리 의료보험의 대폭적인 허용과 시장성의 강화,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의 폐지, 그리고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 등이었다.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 문제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보다는 영리 의료보험의 확충을 통해 해결해야 하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열악한 공공의료기관 비중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한 줌도 되지 않는 공공병원의 시장적 개혁을 부르짖는다.
참여정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의 주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에 최고조로 달했다가 광우병 사태라는 국민적 저항과 맞물리면서 잠시 한 발 뒤로 물려나면서 소강상태를 보였다. 한편,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되고 있는 의료 영리화는 그 접근 방법에서 기존의 정책들과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큰 제도적 틀의 변화가 아닌 제도 내에서의 변화를 통해 의료서비스의 상품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학습 효과의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 영리화 정책에는 영리 의료보험,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 영리법인 병원 등 제도의 틀을 위협하는 거시적 주장은 없다. 대신 비영리법인 병원의 영리 자회사 설립 허용, 수익창출을 위한 부대사업 확대 등의 미시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거시적 접근이든 미시적 접근이든, 궁극적 지향은 의료의 상품성 강화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오히려 현행 법률의 취약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민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원하는 정책을 실현하려는 점에서 더 노골적이다.
우리나라 의료법의 기본 취지는 의료의 비영리성
우리나라 의료법의 근간에 깔려 있는 기본가치는 의료의 비영리성이다. 1951년에 제정된 최초 의료법(국민의료법)의 목적은 '국민의 보건향상과 국민의료의 적정을 기함'이었으며, 이 법률의 제31조에는 '의료업자가 아닌 자로서 의료기관을 개설코자 하는 자는 영리의 목적이 아닐 것에 한하여 주무부 장관은 허가할 수 있다.'로 명시함으로써 의료의 비영리성을 강조하였다.
현 행 의료법에서도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함'을 그 목적으로 하고, 영리병원을 인정하지 않고, 환자의 유인·알선을 엄격하게 통제하며, 의료광고를 할 수 없는 내용들에 대하여 법률로 규정하는 등 의료의 비영리성을 견지하고 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법의 부대사업은 1973년 전부개정 의료법에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자로 의료법인 조항이 신설되면서 처음 등장하였다. 당시 부대사업의 범위는 '의료인 및 의료관계자의 양성 또는 보수교육의 실시”와 “의료 또는 의학에 관한 조사연구' 두 가지만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제한적 범위는 2006년 10월 의료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이러한 의료법 개정의 배경이 된 것은 바로 참여정부의 의료서비스 산업화 기조였다. 즉,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위한 법률적 뒷받침이 필요했고, 그 결과가 의료법인이 수행할 수 있는 부대사업 범위의 대폭 확대로 구체화된 것이었다. 2006년 10월 개정된 의료법에서 가장 뼈아픈 점은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의로 지정할 수 있도록 명시한 것이었다.
현행 의료법에서 의료법인이 할 수 있는 부대사업을 살펴보면, 노인의료복지시설의 설치·운영, 장례식장의 설치·운영, 부설주차장의 설치·운영, 의료정보시스템의 개발·운영사업(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 그리고, 휴게음식점 영업, 일반음식점 영업, 이용업과 미용업 등 환자 또는 의료기관 종사자 등의 편의를 위하여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것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에 부대사업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자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는 규모가 작은 중소병원을 운영하는 의료법인도 외국인 환자 유치, 숙박업, 여행업 등의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이를 위한 자법인의 설립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급종합병원(3차 병원)에서도 외국인 환자 병상 수 제한 규정(현재는 전체 병상 수의 5% 미만)에서 1인실은 제외하는 등 외국인 환자 병상을 확대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노리는 부대사업 확대의 주된 목적은 비영리 법인 의료기관들의 외국인 의료관광 유치를 통한 수익 창출인 셈이다. 취약한 공공의료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정부가 외국인 의료관광 유치를 위해서는 이렇게 적극적이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필자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허탈하기 짝이 없는 심정이다.
의료의 영리성 강화는 건강 격차의 심화 초래
과거에는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의료정책의 주된 과제였다면, 이제는 대다수의 선진국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의료의 접근성뿐만 아니라 실제로 제공받는 의료서비스 질에서의 형평성을 높이는 것이 의료정책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연구들에서 단순한 의료자원의 양보다는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건강 격차에서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의 료법인에 부대사업 범위를 대폭 확대해주고 영리 자법인의 설치를 허용하는 것은 국내 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돈벌이가 되는 의료관광에 치우침으로써 일부 과목에 전공의들이 몰리는 것처럼 일부 상품성이 높은 의료서비스 영역만 강조될 가능성이 높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남용을 철저하게 막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나, 공공의료기관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보건복지부가 수많은 민간병원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 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상식적으로도 현행 국민건강보험 진료를 통한 의료기관의 수입이 제한적이고, 의료법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병원은 상황이 더욱 열악하기 때문에 부대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대료 수익을 높이기 위하여 필수적인 진료 공간들이 축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영국의 병원들에서도 자율경영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부대사업이 대폭 확대되었고, 이로 인해 필수적 진료 공간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한 바 있다. 영국 정부가 모든 영국민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천문학적인 정부재정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병원들에서 예외적으로 높은 병원 사망률을 나타낸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더군다나 의료에 대한 공적 재원을 투입하기를 꺼려하는 현 정부에서 의료 영리화의 결과는 명약관화해 보인다.
의료법의 기본 취지를 살려야
우리는 영리 행위의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각종 규제의 완화가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특히,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에서 영리성의 허용은 법적으로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한다. 의료 영리화 정책들이 제안될 때마다 동일한 레퍼토리가 반복되어 왔었는데, 공공의료와의 조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의료 영리화 정책들로 인해 공공의료가 강화된 적은 없었으며, 오히려 공공의료는 홀대받아 왔었다. 지난 10년간의 역사가 이를 반증해 주고 있다.
부대사업 범위의 대폭 확대와 영리 자법인의 설치 허용은 의료법의 목적인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저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중차대한 사항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의로 결정하는 것은 의료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일이다. 이러한 의료 영리화의 추진은 반드시 국회에서 여야 간의 충분한 토론과 정치적 합의를 거친 입법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정공법에 해당하는 의료법의 개정을 통해서는 민감한 의료 영리화 정책들을 통과시키기 어렵겠다는 판단에서 꼼수를 부리고 있다. 현행 의료법의 개정 없이 추진되는 정부의 의료 영리화 시도는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히려 의료법을 개정하여 부대사업의 확대 및 허용에 관한 보건복지부 장관의 권한을 엄격하게 규정하는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하위법령인 의료법 시행규칙을 통해 의료의 영리화를 추진하려는 현 정부의 꼼수에 대항하여 의료의 비영리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의료법의 개정'을 제안하고 싶다.
(이 글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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